+찬미 예수님
먼저 저를 믿어 주시고 이 봉사의 기회를 주신 배하정 다니엘 주임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와 함께 봉사해 주실 회장단 위원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립 니다. 부족한 점도 많고 실수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신자분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많은 협조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2018년에 회장단에서 총무로 봉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새신자 교리반에서 회장단을 소개하며 함께 교리를 들었는데, 그중 유독 기억에 남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회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저에게 교회는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부모님들께서 야단을 치시든 설득을 하시든, 교회는 반드시 가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심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1974년, 제가 아홉 살이 되던 해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고, 그곳에서 가톨릭 사립학교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수녀님들 밑에서 공부하며 좋은 기억도 많았지만,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수업 전에 아이들이 주말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누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누구 생일파티에 갔는지” 같은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저는 그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외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한국 학생이 저 혼자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괜찮아. 너희는 여기 교회에서 친구들이 있겠지만, 나에겐 한인 가톨릭 교회가 있고, 나를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곳에는 맛있는 음식도 있었고, 저는 CYO 회장도 해보고, Car Wash 행사도 하고, 부활절에는 계란에 색칠도 하며 즐겁게 활동했습니다. 그 당시 교회는 저를 받아주는 곳이었고, 재미있는 곳이었으며,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작은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유대교 신자들, 그리고 종교를 믿지 않는 친구들과 교수님들을 만나면서 제가 살아오던 세상이 얼마나 좁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 신앙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교회와도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학업을 마치고 로스쿨을 졸업한 뒤, 펜실베이니아의 한 시골 지역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판사님을 만나 많은 것을 배우며 일은 잘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많이 외롭고 힘들었습니다. 한인 변호사도 저 혼자였고, 무엇보다 제 삶이 제자리에서 빙빙 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많이 지쳤었습니다. 그 무렵 법원 근처에 가톨릭 대학교와 그 옆의 성당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성당 앞으로 향해 미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미사에 들어서는 순간, 제 마음이 놀랍도록 편안해졌고 큰 위로를 받았음을 느꼈습니다. 마치 교회가 두 팔로 저를 감싸 안아 주는 것처럼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이 스르르 녹아내렸습니다. 그때 교회는 제게 정말로 필요한 위로를 주었습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교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제 아이들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어 주는 중요한 장소가 된 것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만약 같은 질문을 신자분들께 드린다면 각자의 삶과 신앙의 길은 달라도 “왜 교회가 나에게 필요한지”, “왜 교회가 소중한지”에 대한 답은 결국 같을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성당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귀한 시간을 쪼개어 보수도 없이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어떤 선배님께서 제게 “회장단은 봉사자를 위한 봉사자다” 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는데, 저는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저희가 많이 부족하고 실수도 있겠지만 신자분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많은 협조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도회장 허진 세바스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