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을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는 백인대장의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여러분을 위해 묵묵히 기도하는 사제로 살고 싶습니다."
찬미 예수님!
지난 12월 26일 버지니아 성 정바오로 성당 보좌신부로 새로 부임한 양종욱 대건안드레아 신부입니다.
어떤 인사말씀을 드릴까 고민하다, 서품성구에 대해 소개하는 것이 저에 대해 가장 잘 설명드릴 수 있는 것 같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다른 동기들보다 1년 늦게 서품을 받았습니다. 부제품을 받기 직전에 저는 개인적으로 큰 상처를 받고, 신학교를 그만두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싶지 않아 휴학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휴학기간 동안 일을 하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정작 하려던 고민은 못했기에 복학하고 기도 안에서 다시 고민해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복학하고 나서도 미뤄둔 공부와 논문에 집중하다 보니 또 정신없이 한 학기가 흘러 어느덧 부제품을 받기 위한 대품피정이 다가왔습니다.
대품피정 첫날 밤 성체조배를 하러 성당에 들어가 앉았습니다. 그동안 애써 미뤄두었던 말들을 예수님 앞에서 꺼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수님께 ‘내가 그토록 힘들 때,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대체 뭐하고 계셨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을 토로한 후에, 늘 하던대로 다음 날 복음을 묵상했습니다.
바로 그 대품피정 첫날 기도드렸던 마태복음 8,5-11의 말씀이었습니다. 백인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의 종을 낫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입니다.
이 복음 속에서 저는 ‘백인대장의 종’이었습니다. 그 종의 입장에서 보면, 중풍으로 인해 몹시 괴롭고, 심지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그의 곁에는 예수님도 계시지 않았고, 사랑하는 그의 주인 백인대장도 없었습니다. 쓸쓸하고 외로이 혼자서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길 위에서 겸손하고 진실한 믿음으로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위해 간곡히 빌었고, 예수님께서는 길 위에서 백인대장의 믿음을 보시고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제가 힘들 때,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꼈을 때, 많은 교우분들이, 심지어는 저랑 서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분들도 저를 위해 예수님께 기도를 드려주었고, 또 예수님께서는 그 교우분들의 기도를 들어주고 계셨음을 기도 안에서 느끼게 되었고, 그동안 쌓여왔던 감정에 대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을 위해 예수님께 기도를 드리는 백인대장과 같은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결심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위로에 대한 감사함과 그에 대한 보답의 의미인 이 결심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기 위해 백인대장의 기도인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라는 구절을 제 서품성구로 정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곳에서도 그 마음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안에서 좋은 추억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면야
너무나 좋겠지만, 교회 안에서 쌓았던 좋은 추억으로 인해 어른이
되어서도 교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을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이 제가 가장 전해주고 싶은 부분입니다. .
이를 위해서는 저와 청소년단체 봉사자들뿐만 아니라 부모님들과
교우분들의 도움도 많이 필요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죠. 우리 본당의 청소년·청년들을 위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마음껏 표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우리에게 더 큰 사랑과 기쁨을 선물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저는 서품성구의 마음을 담아 여러분들을 위해 묵묵히 기도하는 사제로 살아가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또 제가 그런 사제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여전히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