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연중 제20주일)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Date entered: 08-14-2016
'평범 속에 비범'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꿈을 가꾸고
실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아주 작은 것이고 일상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신앙인은 모래알 같은
작은 것에서도 천국의 비밀을 새기고 끝까지 참고 견디는 기다림의 비결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통상 종교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고요가
목표인 것 같은데 '이 세상에 불화와 분열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하시면 또한 말씀하시지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루카 12,51)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구원의 길은 넓고 평탄한 것이 아니라 좁고 험한 한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새겨 보면
오늘 주님의 말씀이야 말로 정적인 것에서 동적이며 안일무사가 아닌 모험이며 미래를
향한 투신인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십자가 죽음 에서 오늘 말씀의 깊은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호수의 평화로움에서 번거로움의 우리 자신이 머물고 싶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호수로 모여드는 물줄기를 보면 어느 것 하나 요동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면서 미래의 삶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그런 길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아버지께 순명하는 십자가의 삶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길은 세상이 말하는 ‘좋은 게 좋다.’식이 아닙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겪었던
박해 받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아 그 대표적인 인물로 이스라엘 멸망을 예고했다고 해서 적에게 심리적으로 적을
이롭게 한 죄를 물어 반대자들은 사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밧줄에 묶여 사람들에 의해 저수 동굴에 물기 없는 진흙에 빠지게 됩니다.

다행이도 에벳 멜렉이 임금에게 청해서 그들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목숨을 살리지요.

예레미야 예언자를 위시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들은 늘 생명의 위협을 받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비단 예레미야 뿐 아니라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박해도 받고
생명의 위협까지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수석사제와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의 반대를 받는 분이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의 길을 따르는 박해를 받게 마련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반대자들 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서도
어려움을 겪으리라고 하시며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루카 12,52)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을 모범으로 하며 성실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 버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그러면서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 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히브 12,1-2)

예수님의 삶을 보면 가신 길이 평화가 아니라 반대자들의 표적인 십자가이셨습니다.

이제 성령의 불을 지르러 오신 주님을 통하여 우리도 안일하고 소극적인 신앙의 삶이 아니라
분열과 박해의 순간들이 있다 해도 사도 바오로의 표현대로 주님만을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꾸준히 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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