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연중 제18주간 화요일)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Date entered: 08-02-2016
갈릴리 호수를 배를 타고 건너보면서 저 멀리 보이는 산들을 봅니다.

바다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배에 부딪치는 물결과 일어나는 파도를 보면 풍랑을 만나
애쓰던 제자들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한 때 머물던 호숫가와 호수에서 지난 그 일들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지는
기적의 순간을 맞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빵의 기적을 베풀었던 곳에 주님을 두고 배를 탑니다.

물론 주님께서 서둘러 그곳을 떠나게 하신 의도가 있으셨다 해도 그들의 마음을
여러 가지였을 것입니다.

우선 스승께서 안 계신 그 자리는 무언가 비어 있었을 것이고 또 심상치 않은
바람결과 일어나는 파도에 불안도 했을 것이지요.

시간이 새벽이었으니 아직 어두웠을 때 물위를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놀라지 않겠어요?

제자들이 '귀신'이라고 소리를 지른 것을 우리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가 전해주는 주님께서 물위를 걸으신 사실(14,22-33)을 마르코도(6,45-52),
그리고 요한(6,16-21) 전해 주고 있습니다.

서로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인 것은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마태 14,13-21;
마르 6,30-44; 요한 6,1-14) 후에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마르코는 빵의 기적 후에 바로 주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벳사이다로 건너가게 하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르코는 주님께서 물위를 걸으신 일과 제자들이 놀라는 장면을 전하면서
마무리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6,52)

다시 말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놀라운 빵을 기적을 보고도 주님께서 누구이신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마르코가 이 복음을 전하면서 가졌던 의도는 무엇일까요?

마르코는 주님께서 빵의 기적 후의 제자들을 먼저 보내고 군중을 보내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자들마저 기적의 열기에 들뜨지 말라는 뜻으로 애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억지로라도 주님을 왕으로 모시려 했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주님의 심정에
우리도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르코는 빵을 많게 하신 주님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보고도 아직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깨닫지 못한 사실을 드러내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마태오도 마르코와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서둘러 제자들을 보냈다고 했지만 마무리가
마르코와 다릅니다.

물위를 걸어 오시는 주님을 바라 보던 베드로는 웬일인지 그 놀라운 경황에서도 자기도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걸어서 주님께로 갈 수 있도록 명령을 해 달라고 스승께 주문합니다.

주님께서 물론 베드로에게 오라고 하시지요. 베드로는 용기 있게 물위를 걸어서 주님께로
향합니다.

그런데 거세게 밀어붙이는 파도에 지레 겁을 집어먹고 맙니다.

그리고 그는 물에 빠지면서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14,30)라고 소리를 지르지요.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라는
말씀과 함께 나무라십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33절)

주님께서 게넷사렛에 주님께서 도착하셔서 당신을 보고 온 사람 중에 병든이들을 고쳐주시는
기적을 아울러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옷자락이라도 만지려 했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치유가 됩니다.

마태오는 치유라는 말 대신에 ‘구원을 받았다’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마태오는 바로 물에 빠진 베드로와 그를 구하신 주님의 이야기를 통하여 배에 있던 사람들이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이해하게 된 사실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오가 전하는 복음을 통하여 우리는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제자들처럼 주님을
따른다고 나선 우리도 주님을 사랑하고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삶의 풍랑을 만나면 허우적대지요.

때로는 방향조차 모르고 내가 신앙을 가졌다는 사실도 잊은 채 세상 사람들이 떠드는 대로 우리고
소리를 지릅니다.

주책스럽게 보이는 베드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소리를 지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훌륭한 기도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 곧잘 세상을 향해 떠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나오는 것은
실망섞인 푸념과 실망, 불평들이지요.

놀라운 것은 주님께서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다정히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걱정하거나 겁을 집어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과 함께
멋지게 보내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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