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연중 제18주일)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Date entered: 07-31-2016
가끔씩 우리는 이웃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습니다. “어떻게 번 돈인데.”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돈을 벌며 또 재산을 모으며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돈을 벌어 놓고 살면 좋은데 그 기준을 딱히 정해 놓을 수가 없어서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벌어야지. 좀 더 벌어야지.'을 내면서 우리는 한 삶을 살고 있나봅니다.

요즈음 드라마에서 부쩍 상류층의 집이며 고급차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며 걱정이 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젊은이들이 부유하고 호화로운 장면만을 보면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의 최고인양
착각할 것 같아서 지레 염려가 되기도 하구요.

그 이면의 고통과 어려움들은 가려지고 오색무지개 빛만 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돈이면 다 된다.’라는 가치관을 떨어지기 쉽겠지요.

요즈음 빈부의 양극화가 심각해지 있고 많은 이들이 가난한 세계를 점점 잊고 마치
재물이 인간의 행복의 잣대인양 착각하며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군중 가운에 한 사람이 주님께 와서 자신의 형에게 부모의 유산을 나누어주라는
중재를 부탁합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루카 12,14)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제안을 거절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15절)

그리고 이어서 주님께서 한 부유한 사람에 대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는 자신의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고 곡식을 저장할 창고를 크게 지을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외치지요.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19절)

얼핏 보기에는 부자는 자기의 재산으로 즐기는데 잘못한 것이 없어 보이지요.

부자는 그야말로 그 재산이 당연히 것으로 여기며 그 안에 자신만이 머무를 수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20절)

주님께서 비유를 마무리하시며 다음과 같은 교훈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21절)

부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돈가지고 내 마음대로 하는데 왜 말이 많은가?’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맞는 말인 것 같아도 그 말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 생명이 어디 있으면 자기 재산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보통 그런 말을 합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빈손으로 태어났다.’고요. 사실 맞는 말이 지만 사람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돈을 벌고 모읍니다.

그러다 보면 그 돈이 자기 노력의 댓가로 여길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돈을 번다는 것은 원래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자기 소유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돈을 벌지만 쓰기도 하고 또 잃어버리기도 하지요.

그런데 확실한 것은 우리가 죽을 때에 그렇게 애써서 번돈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갈 때도 세상에 온 것처럼 빈손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집이라고 하지만 내가 죽으면 그 집이 어떻게 될지 누가 와서 살지 모릅니다.

옛날 어린 시절에 살던 집을 가본적이 있나요? 꿈에도 그리며 그림처럼 마음에 새기던
그 정답던 집을 찾았을 때 대부분이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나의 반가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누구세요?’하고 물어 보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옛날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인데, 지나다가 그리워서 들렸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아 그러세요? 이 집 드릴까요? 와서 사시겠어요?’ 합니까?

그 주인이 마음씨 고운 사람이 아니면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지요.

그러고보면 사실 이 세상에 영원히 나의 것은 없는 것입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사는 집도 사실 빌려 쓰는 것이고 내가 타는 자동차도 따지고 보면 빌려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좀더 ‘내것’ ‘내것’하며 욕심 안에 나와 관련된 물것을 가두지 말고 좀 더
여유롭게 생각하며 나 외의 것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사실 넉넉한 것입니다.

어린 아이일 때는 뭐든 손에 잡히기만 하면 자기 입으로 가져가지요. 그러다가 사람이 성숙하면서
자신에게 가져갈 음식을 이웃에게도 나누어 주지요.

성숙한 신앙이라면 자기도 쓰기에 부족한 것을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이웃의 기쁨과 희망을 위해서도 내 자신을 희생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지요.

성령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나누는 삶과 함께 새겨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콜로 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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