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연중 제17주간 목요일)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

Date entered: 07-28-2016
신앙인들에게 엄숙하고 또 신중한 심정이 될 때가 세상종말과 심판이지요.

그래서 신앙인은 사람들을 눈을 살피기 보다 먼저 하느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시편 111,10)이라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며 노래하였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우리는 곧잘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 보다는 먼저 인간의 이해관계, 자기주장에 휘말려 상대를 인신공격하고 헐 뜯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이 하나같이 자기들이 옳다고
떠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인가 사람의 마음보가 하는 것인가를 구분하는
원칙은 하나입니다.

사람들을 하나로 평화로 이끌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고 사람들을 흐트러트리고
미움과 분열로 몰고 가면 그것은 인간 욕심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이런 세력을 사람들은 '악의 그늘' 에 있는 자들이라고 하지요.

우리의 모범이시고 늘 위로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먼저 미움으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지요?

"세상이 너릐를 미워가더는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요한 15,18-19)

예수님께서 세상 종말에 양과 염소를 갈라놓듯이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시고
선인은 축복과 함께 하느님 나라로 부르시고 악인은 징벌을 내리시며
어두운 곳으로 내쫓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종말에 대해 그물에 걸린 고기에 대한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태 13,47-48)

좋은 생선을 어떤 것일까요?

세상 종말에만 가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이미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첫 자리에 놓는 사람의 모습은 평화와 자비의 모습이겠지요.

악과 미움을 품는 사람은 얼굴에서도 또 그의 말에서도 드러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얼굴이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을 떠나서 영혼이 맑은 사람은 이웃에게도
평화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인은 그물에 걸린 좋은 생선으로
이웃에게 사랑의 마음으로 가다가려고 합니다.

왜 그런 말이 있지요? 말은 점잖고 웃는 것도 꾸며서 너털웃음까지 웃는 사람을 조심하고
어른들은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욕심으로 꾸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웃음을 꾸밈없이 비록 염소소리, 주책없는 소리로라도 어린 아이처럼 웃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면 그는 분명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고 진정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그 반대가 되는 사람은 서로의 좋은 관계에서 패를 가르거나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 종말론의 좋은 생선은 못되는 것이지요.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람의 특징 중에 하나는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
이간질과 사람을 헐뜯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의 모습에서 겉은 비단 같아도 겉꾸밈이 흘러나와서 그런 분위기가
얼굴에서도 풍긴다고 합니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아서 이런 사람 주위에는 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작당을
일삼기 때문에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하지요.

이런 사람들이 당장은 요란하고 우세한 것 같아도 하느님께서는 이들을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어서 하느님 나라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그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주인과 같은 사람이지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율법학자는 구약의 율법도 다루지만 거기에서 새롭게 이어지는
새계명도 내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에만 매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준비를 할 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을 살피는 신앙인이 아니고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참다운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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