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Date entered: 07-26-2016
사람에게는 저마다 조국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자에게도 조국은 이스라엘입니다.

예언자가 비록 하느님의 뜻을 전하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지만 한 순간에 적에게
무너지는 조국의 참담함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 날의 슬픔과 고통을 예언자는 잊지 못하며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들에 나가면, 칼에 맞아 죽은 자들뿐이요,
성읍에 들어가면,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뿐이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다닌다.”(예레 14,17-18)

미래가 없는 현실에서 그는 하느님께 하소연 합니다.

그의 심정은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유다를 잊으시고 조상들에게 해 주셨던 약속을
미루시는 듯합니다.

모진 매를 드시며 이스라엘을 몰아 부치시는 하느님이시지만 그래도 예언자가
하소연 할 수 있는 분은 하느님 뿐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사라진 희망과 구원을 일깨우며 다시 하느님께 외칩니다.

“이민족들의 헛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비를 내려 줄 수 있습니까? 하늘이 스스로 소나기를
내릴 수 있습니까? 그런 분은 주 저희 하느님이신 바로 당신이 아니십니까? 그러기에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당신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22절)

오랫동안 잊혀졌던 ‘피사리’ 말이 떠오릅니다. 벼 사이에 있는 피라는 잡초를 뽑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름이 지나 초가을이 시작 되면 벼들이 익어갑니다.

그런데 그 황금벌판 중간 중간에 우뚝우뚝 솟은 잡초인 피들을 아버지와 동네 아저씨들이
‘품앗이’로 돌아가며 뽑는 것입니다.

일손이 모자라면 또래의 친구들도 한 몫을 하며 피사리를 돕습니다.

여름 내내 클 때는 같았던 피들이 수확의 마지막에는 기승을 부립니다.

그런데 쌀이 떨어지고 보리로도 메꿀 수 없는 지경에는 뽑았던 잡초인 피를 모아
털어서 양식을 만들어 끼니를 떼 울 때가 있었나 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잡초인 피를 빻아 먹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을 가리켜 ‘피죽도 못었냐?’ 또는 ‘야, 피죽도 못 먹은 놈아!’ 라는
표현을 합니다.

잡초인 피로 만든 밥도 아니고 죽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먹을 것이 못 된다는 말이겠지요.

농경사회였던 우리 선조들에게 익숙한 벼농사의 잡초인 피라면 예수님 시대의 밀이나
보리 농사의 잡초인 ‘가라지’는 같은 맥락의 단어일 것입니다.

말은 달라도 공통적인 것은 ‘피’나 ‘가라지’가 벼나 또는 보리나 밀 밭의 잡초로 비슷하게
자라서 처음에는 구분하기가 힘들다가 수확 때가 되면 피나 가라지가 제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이지요.

농부들은 벼를 뿌릴 때에도 좋은 씨를 가려서 심듯이 보리나 밀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지도 않은 그 잡초가 자라나서 좋은 농사를 망칠 수 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라지의 이런 광경을 보시고 마지막 심판 때에 선인과 악인을 구분하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마태 13,37-40)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를 들어 세상 종말에 대해서 설명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악인과는 달리 의인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새겨들으라고 하십니다.

신앙인은 희망을 기르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비록 그것이 당장은 실망과 고통의 연속인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신앙인은 그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찾고 사랑의 하느님께서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좋은 것으로 이끌어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희망의 씨는 당장은 딱딱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이 보이지만 거기에 물을 주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그 희망을 싹을 티우고 자라며 그렇게 기다리는 결실을
맺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가라지’가 기승를 부리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기다리고
참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당장 일어나는 데에 자신들의 기를 모으지만 의인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하느님의 손길을 끈질기게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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