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승리의 영광 에라스모 성인의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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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s)에서 보는그림 속 성서 32

<에라스모 성인의 순교> 1628-1629, 유채화, 320 x 186 cm

베드로 대성전의 44개 제대 중 에라스모 성인의 유해는 십자가 형태 구도에서 우측 팔 부분 익랑(Transept)에 안장되었다. 에라스모 성인은 초기 기독교시대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포르미에 지방 주교로 수많은 이들을 성공적으로 개종시켰으나 로마 황제의 박해로 303년 순교하였다. 성인은 1119년 베드로 대성전의 전례나 중요한 연관성 없이 처음으로 소개되어 신자들의 추종과 헌신으로 제대는 지속적으로 유지되었다. 성인의 제대를 장식하는 ‘에라스모 성인의 순교 (Martyrdom of St Erasmus, 1628~1629)’는 대성전의 수백 점의 예술품 중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로 프랑스 화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제단화이다. 푸생이 30살에 예술의 성지인 로마에 도전해 공식적으로 주문받은 첫 작품으로, 기존 무명화가의 낡은 제단화는 이 그림으로 교체되었다. 관람객은 1739년 모자이크로 대체된 대성전의 복제품과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한 원본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다.

박해 시기 산 사람의 창자를 꺼내는 혹독한 고문 장면을 푸생은 3미터가 넘는 기념비적 규모로 구성해 예술적 도전을 시도하였다. 거칠고 투박한 목제 장의자에 몸통만 걸쳐진 성인의 양 팔목은 머리 위의 무거운 돌에 묶여 있고 양 다리는 허공에 들려 있다. 벗겨진 붉은 색 제의는 신체 밑에 깔려 땅바닥에 피의 웅덩이처럼 펼쳐졌고, 그 위로 버려진 하얀색 주교 모자와 영대가 도드라진다. 흰 옷의 제사장은 왼쪽 상단의 헤라클레스 청동상을 가리키며 절박한 상황에 처한 성인이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강요한다. 말을 탄 로마 군인의 감독 아래 네 명의 사형 집행인은 배의 밧줄을 감는 스풀에 성인의 창자를 감아 끌어 당기는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작업을 냉혹하게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그들의 이국적 터번은 성인이 복음을 전파하고 선교한 중동 지역을 암시한다. 관람객은 하단의 참혹한 장면을 거슬러 그림 상단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 든 월계관과 종려나무 가지에서 순교자의 승리를 확인한다.

푸생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주제를 아름답게 창조하여 저항하기 힘든 매력적이고 복합적인 화면을 제시한다. 배경의 헤라클레스 조각상 고대 로마 건축물은 그가 추구한 르네상스의 부활과 고대 그리스의 향수를 반영하지만, 역동적이고활력넘치는인물 묘사와 구도는 당대 독보적인 바로크 양식과 타협한 절충안이다.그는 ‘순교’ 라는 참혹하고 비극적인 내러티브이자 숭고한 종교적 주제를 17세기 고전주의 대가의 화법인 웅장한 장엄양식으로 구현해 화면에 승화시켰다.

모진 고문에도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정신으로 죽음의 경지를 극복한 당당한 성인의 신체는 이상화된 고전주의적 인체 표현이다. 등장 인물들의산만하고 분주한 동작과 대비되는, 극심한 고통에 무감한듯 고요한 초월적 태도가 뿜어내는 아우라는 화면을 제압하며 위대한 영웅적 무게감을 과시한다. 관람객은 그림표면에서 불의에 박해당하는 희생자가 결국은 최후의 승리자로 변모해 새롭게 제시하는 불멸의 모범을 읽는다.

푸생은 미술 아카데미가 추구한 이상적 미술의 전형에 위대한 명제, 성인의 순 교 라 는 역사적 사건을 대입해 체계적이고 독자적인 조형적 질서를 구축해 명작을 탄생시켰다. 그가 추구한 화면의 조화와 균형은 그리스도교의 박해와 고문으로 순교에 이르는 비참한 장면이 역설적으로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삶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증명한다.

고통 속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과 육신을 그리스도께 봉헌한 에라스모 성인은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하여 무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에 영속적 질서를 시각언어로 전달한다. 관람객은 그림에서 배교의 위협에 저항 없이 죽음을 수용하는 성인의 순교에서 신앙적 최고치의 실현이자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해 부활에 이르는 승리의 영광을 확인한다. ‘에라스모 성인은 폭풍 전후에 배의 돛대 꼭대기에 푸른 빛으로 나타나 선원들을 보호한다는 표시와 믿음이 전해져 내려온다.’ 두려움 없이 믿음을 전파한 성인의 순교와 통공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되는 희망과 그리스도와의일치를 기도한다.

  • 이순희 아네스
  • 미술 평론가
  •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르네상스 및 현대미술사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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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entered: 09-2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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