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성원경 신부의]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요한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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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성 요한 23세의 ‘평정의 십계명’과 함께
놓아두며 살기

  • 요한네스 하스 지음
  • 서명옥 옮김
  • 바오로딸 출판
  • In Nomine Patris , Et Filli , Et Spiritus Sancti, Amen. Dominus vobiscum. Et cum spiritu tuo.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아마 우리가 50년 정도 전부터 신앙생활을 했다면 당연히 알고 있을, 아니 입에 배어있을 문장입니다. 저 라 틴 어 문 장 은 미 사 의 시 작 부 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와 함께.’입니다.

    50여년 전부터 신앙생활을 했다면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이 라틴어 문장이 왜 입에 배어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관련이 있습니다. 1962 년부터 1965년까지 있었던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평신도들에게 가장 관련 있는 것은 바로 미사입니다.

    지금도 오래된 성당에 가면 제대가 2개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미사를 봉헌하는 제대가 있고, 그 뒤로 벽에 붙어있는 제대가 또 하나 있습니다. 미사의 역사를 간직하기 위해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제대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사제가 벽에 붙은 제대에서 라틴어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신자들은 사제와 주고받는 말들을 뜻은 잘 알지 못할지라도 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도 그 시대를 살지 못해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어른 신부님들이나 오래된 구교 신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복사를 하기 위해서는 미사와 관련된 라틴어 시험을 봤다고 합니다. 신자들과 주고받는 말들에 대한 대답을 큰 소리로 해야 했고, 또 성찬의 전례에서 종을 치는 타이밍 등을 알고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미사 중의 묵주기도도 그 당시에 행해졌습니다. 어차피 신부님이 하고 있는 미사를 알아듣고 따라갈 수 없으니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성당에 앉아 혼자 묵주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자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성체를 받아 모시기 위해 미사에는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어떤 내용을 말하는지 알 수 없어 수동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많은 것들이 변했습니다. 사제는 신자들을 향하여 자국어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입장이 아닌 능동적인 자세로 미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사 경문들을 함께 들으며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사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에게 큰 선물이 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그것은 지난 2014년 4월 27 일 시성되신 성 요한 23세 교황님에 의해서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늙은 나이에 교황이 되신 요한 23세였기에 별 다른 일 없이 임기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한 23세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교황이 된 직후 공의회를 준비했습니다. 결국 62년부터 65년까지 회개와 쇄신을 위한 공의회가 있었고, 지금의 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의회 정신을 다 살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은 걸 보면 요한 23 세 교황님께서 정말 시대를 앞서 가신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심장이 멎었을 때,/ 그들이/ 대성당 둥근 지붕 아래/ 목자 잃은 슬픔에 잠겨있는 백성 앞에/ 그를 뉘어놓았을 때,/ 우리는 보았네,/ 주님의 시계 위에서/ 사랑의 시간을 가리키던,/ 이제는 움직이지 않는 시곗바늘인 그를.

    책상에 놓여진 지구본을 들여다보고 온 나라를 살피며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하셨던, ‘선하신 교황(Papa Buono)’이었으며, ‘모든 이의 형제’라는 별명을 가진 성 요한 23세 교황이 선종하자 오스트리아의 시인인 크리스티네 부스타가 슬퍼하며 지은 시입니다.

    요한 23세는 하느님을 믿었고 그 믿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열매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평정’입니다. 그는 “오늘 하루 나는 ~를 하겠다.” 는 식으로 ‘평정의 십계명’을 만들어 일상에서 ‘놓아두며’ 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요한 23세와 같이 ‘놓아두며’ 살기 위해 노력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요한네스 하스’가 지은 ‘놓아두며 살기’라는 얇은 책을 통해 ‘평정의 십계명’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삶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무언가를 하겠다. 혹시 불쾌하더라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하겠다.”,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겠다. 아름다운 모든 것에 기뻐하고, 두려움 없이 하느님의 호의를 믿겠다.” 등 열 가지 계명을 통해 하루하루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이, 인성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사건과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제자로 합당히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도 성 요한 23세 교황처럼 ‘평정의 십계명’을 우리 마음 한 켠에 새기고 묵묵히 생활해봅시다. 그럴 때 우리도 기쁨에 찬 하느님 사랑의 길, 친절한 이웃 사랑의 길, 삶 한가운데서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길을 안내하던 이정표였던 그분을 따라 하느님의 나라로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 23세의 평정의 십계명

    1. 오늘 하루 나는 내 삶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
    2. 나는 행동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 품위 있게 행동하고 아무도 비판하지 않으며 오직 나 자신만을 비판하고 바로잡겠다.
    3.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뿐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도 그렇게 창조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지내겠다.
    4. 나는 상황이 내가 바라는 대로 맞춰지기를 바라지 않고 상황에 나를 맞추도록 하겠다.
    5.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10분만이라도 좋은 책을 읽는 데 쓰겠다. 육신을 위해 음식이 필요하듯 영혼을 위해 건전한 독서는 꼭 필요하다.
    6. 나는 착한 일 한 가지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7.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무언가를 하겠다. 혹시 불쾌하더라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심하겠다.
    8. 나는 명확한 계획을 세우겠다.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세우겠다. 그리고 ‘조급함’과 ‘우유부단함’이라는 두 가지 악을 조심하겠다.
    9. 나는 상황이 어떻든지 하느님의 자애로운 섭리가 마치 세상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나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겠다.
    10.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겠다. 아름다운 모든 것에 기뻐하고, 두려움 없이 하느님의 호의를 믿겠다. 선을 행하라고 내게 주신 시간은 12시간 뿐이다. 평생 쉼 없이 선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선을 행해야겠다는 용기마저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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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entered: 01-15-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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