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겸손과 순명 <그리스도의 세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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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보는 그림 속 성서 25

니콜라스 푸생, <그리스도의 세례> , 유채화, 95.5 x 121 cm, 1641/1642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 죄의 사함과 영원한 구원을 받는 은총의 통로로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인 일곱 성사 중 기초가 된다.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권능을 부여받은 아들로 확인되는 동시에 몸소 자신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4대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었다. 물로써 정화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재생을 의미하는 그리스도 세례의 상징적 행위는 숨겨진 생활에서 메시아로서의 공적인 생애가 시작되는 전환점이다. 내셔널 갤러리는 프랑스 루이 13세의 수석 궁정화가인 니콜라스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의 ‘그리스도의 세례 The Baptism of Christ’를 소장한다. 관람객이 만나는 명작은 푸생이 후원자들의 주문으로 제작한 두 벌의 ‘일곱 성사 Seven Sacraments’ 연작 중 첫 번째 시리즈에 속한 작품이다.

푸생은 텍스트가 내재한 위대한 주제, 영웅적 행위나 대서사시 그리고 종교적 주제 등을 선택해 고전주의적 장엄 양식(grand manner)으로 그려내는데, 가톨릭의 대표적 예식인 일곱 성사는 아주 적합한 요소였다. 멀리 요르단강이 전면으로 흘러 들어오는 전경을 가로 질러 13명의 인물을 배치한 화면은 균형과 조화 그리고 비례와 규범에 기조한 고전적 양식으로 그의 지적 이론적 전통을 대변하는 화법으로 탄생한 조형언어이다. 요르단강 오른 편, 무릎을 꿇고 예식을 돕는 날개 없는 천사들과 완전한 하느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인 그리스도는 천상의 영역에서 물로써 온전한 정화에 임한다. 세속적 세상인 강 왼 편의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 머리 위로 용기를 든 순간 그리스도 머리 위 일직선상에 성령의 비둘기가 날아 들며 들리는 아버지의 말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로 삼위일체가 완성된다

하느님의 음성이 선포되는 찰나적 순간, 세례자 요한 뒤로 선 인물들의 격렬한 표정과 왜곡된 포즈로 푸생은 인간 형태가 지배하는 역사화를 명백히 논증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두려움에 찬 인물들의 반응을 복잡한 자세와 감각적 몸짓으로 제시해 그림 속 관람자로서의 존재를 환기시킨다. 신비로운 역사적 사건에 동참하는, 화면을 꽉 채운 인물은 무대에서 내러티브를 상연하는 배우처럼 움직임, 표정, 시간이 정지된 채 목가적인 이상향 아르카디아의 풍경 속에 실재한다. 세례 예식의 주역인 인물들과 조연으로 삽입된 목가적인 자연 배경은 풍경의 비중이 점차 커지면서 화면의 주역으로 역전하는 과도기 선상의 화풍이다. 관람객은 수평적 구도에 완벽한 드로잉으로 정밀하게 묘사한 인물들의 명확한 자세와 윤곽선 그리고 밝은 색채의 입체적 구성에서 분출되는 강렬한 감정과 역동적 힘을 체험한다.

푸생은 가톨릭 신앙의 핵심 진리이자 예식인 성사의 근거를 부정하는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 세력의 비판적 공격에 맞서 조형 언어로서 정면 맞대응 한다. 그는 당대 가톨릭 교회가 주장한 교회의 정당성과 고대 로마와의 역사적 근거와 연관성을 증명하여 ‘일곱 성사’에 반영하여 적극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 로 제작한다. 그는 인물들과 표피적 화면에 현혹되어 감정이입을 하기보다는, 세례로 시작되는 영원한 종교적 인류 명제와 텍스트의 상기를 의도한다. 철학자 화가(pictor philosophus)로 불리던 푸생의 회화적 목표는 ‘눈에 대한 머리의 승리’로, 그가 택한 위대한 주제 ‘일곱 성사’는 우연과 무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에 영속하는 질서의 구축을 확인시킨다. 관람객은 신성의 상징인 예수님이 인성을 대표하는 세례자 요한에게 몸을 낮추어 겸손과 순종으로 순명하는 진리를 전달하는 시각언어를 읽는다.

<이순희 아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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