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아름다운 안식 이집트로의 피신 중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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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보는 그림 속 성서 24

제라르 다비드, <이집트로의 피신 중 휴식>, 패널에 유채화 41.9 x 42.2 cm, 1510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동방박사는 별을 따라 베들레헴을 방문하며, 온 세상은 메시아의 오심과 선포로 희망으로 가득 찬다. 동방 박사들은 귀향 길을 묻기 위해 헤로데 왕을 방문하며, 유다의 새로운 구세주의 출현 소식을 전한다. 왕권의 위협을 직감한 왕은 사내 영아 학살령을 내리고, 아버지 요셉은 꿈에 이집트로 피신하라는 주님의 천사가 내린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며 성 가족은 요행히 비극의 칼날을 피한다. 험난하고 고된 여정 중 잠시의 휴식을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으로 묘사한 내셔널 갤러리의 <이집트의 피신 중 휴식 The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은 네덜란드의 제라르 다비드(Gerard David, 1460-1523)의 명작이다. 관람객은 참살을 피하는 긴박하고 고단한 피신 앞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평온한 안식을 얻는다.

성 가족의 이집트로 향한 피난은 기독교 도상학의 주요 주제로 푸른 색조의 전체 화면은 우아하고 침착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국적인 플랑드르 풍경을 배경으로 도입하여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멀리 원경은 당대 사실적인 실제 경치로 16 세기 풍경화의 태동과 전개 그리고 발전 과정에 깊은 영향을 주며 풍경화가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하는 주요한 모티브가 된다. 인물 뒤로 펼쳐지는 밝음과 어둠이 교체되는 지그재그의 화면 구도와 단조로운 색상을 농도 조절과 톤의 변화로 창조한 다채로운 색상은 노련한 화가의 능력이다. 피난길의 암울하고 막연한, 성 가족의 인물이 중심인 화면은 독보적인 배경으로 풍경화로 변환되며 동시에 성서 텍스트의 종교적 주제는 서정적 화면으로 전환되며 미술사의 획기적인 변천을 가져온다. 관람객은 풍경을 등지고 막대기를 들고 가족의 허기를 달래 줄 플랑드르 밤을 따는 중경의 요셉과 전면에 부각된 모자로 성 가족을 확인한다.

다비드는 표면적으로 목가적인 분위기 속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그렸지만 화면 곳곳에 성서 내러티브와 플랑드르 회화의 진수인 숨겨진 기독교 상징(hidden symbolism)을 세심하게 분포하였다. 그는 피신 중임을 암시하는 여행길의 동반자 나귀와 마리아 발치에 놓인 바구니를 전경에 부각시켰다. 성 모자의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섬세한 금빛 후광, 마리아의 푸른 색과 붉은 색의 상징적 색상의 의상, 아기예수가 움켜 쥔 두 손의 포도는 피의 성찬식과 포도주로 전통적 기독교 도상의 핵심 요소이다. 화면 하단 성모자의 발 앞의 양치식물과 엉겅퀴는 겸손의 미덕과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며 바닥에 넓게 분포된 세 잎 클로버는 삼위일체의 상징으로 마치 식물도감처럼 철저한 사실주의에 근거해 그려냈다. 관람객은 아기를 감싼 얇고 투명한 옷, 청명한 하늘, 온화한 땅의 질감과 풍광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묘사한 서정적인 그림에서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가 얀 반 아이크의 혁신적 전통을 확인한다.

성가족의 이집트 피신은 복음서의 간단한 언급과는 다르게 초대 교회와 중세 신학자, 야고보 외경, 아라비아 경전, 황금전설 등에서 보다 전설적이고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마태오 복음서는 구약의 가장 모범적이고 훌륭한 인물 모세를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며 그리스도의 신비 자체를 전형으로 실현시켜 이 장면을 서술한다. 이집트로의 피신은 인간의 몸으로 육화(Incarnation)된 그리스도의 첫 번째 수난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이교도를 물리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로 표명한다.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도래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주님의 말씀에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아버지 요셉과 광배 대신 플랑드르 풍의 두건을 두른 세속적인 어머니 마리아의 순명으로 완성된다. 관람객은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시작되는 인류의 창조적 질서를 위한 고난의 장면을 함께한다.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주님을 기다리는 겸손한 자세와 영원한 삶과 구원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확인한다.

<이순희 아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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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entered: 01-0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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