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구원의 채찍 <성전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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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보는 그림 속 성서 22

<성전 정화> 엘 그레코, 유채화 65.4 x 83.2 cm, 1570

온유와 자비의 표상인 그리스도는 ‘성전 정화 Christ Cleansing the Temple’에서 격렬한 분노를 표출한다. 17세기 미술사에서 강한 가톨릭교회의 수호자였던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대항한 반종교개혁운동에 동참하고자 이 주제로 4 점의 작품을 그렸는데, 내셔널 갤러리는 운 좋게도 한 점을 소장하고 있다. 성전 정화는 그리스도가 가나의 결혼식에서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수난 직전의 주요한 사건이다. 성전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비리에 철퇴를 치는 내용은 네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장면으로 이전부터 도상화되었다. 관람객은 번잡한 시장 바닥으로 변한 신전에서 좌판을 엎고 폭리를 취하는 장사치들과 환전 상인을 징벌하는 그리스도의 격노한 행위를 볼 수 있다.

엘 그레코는 그의 고향 크레타 양식의 특성인 평면 공간, 드라마틱한 운동감, 탄탄한 화면 구성에 복잡 정교한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적 배경으로 신성한 경내를 웅장하고 고전적인 르네상스 궁전으로 차용했다. 대담한 색상과 반사가 심한 화면은 베네치아 미술의 영향으로 화가의 독자적 화풍이 확립되기 이전의 초기 작품이다. 관람객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그리스도의 면모를 부각시켜 강조하는 보편적인 작품과는 다르게 물리적 완력이 등장하는 흥미롭고 신선한 주제에 강한 호기심을 보인다. 광풍이 몰아치듯 성전을 뒤엎는 순간, 폭발하는 호된 노여움이 담긴 화면은 시각언어로서의 텍스트적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여 전달한다. 화면 전체는 군중들의 과장된 불경스러운 행동과 움직임으로 격앙된 소동을 강조하여 통일감을 주지만, 내용상으로 철저한 이분법적 구성으로 최후의 심판처럼 의인과 악인의 자리를 양분하듯 도식화된 성서 내용을 따른다.

관람객의 시선은 화면 정 중앙에 매서운 눈길로 오른손을 들어 채찍을 휘두르는 그리스도에게 향한다. 그리스도의 징벌적 가격을 당한 오른편 인간군상들은 고통스런 몸부림으로 상의가 벗겨진 여성들과 웃통 벗은 왜곡된 신체의 젊은 남성들은 탈출을 시도하며, 동물들과 뒤엉킨 신전은 아수라장이다. 혼돈의 와중인 오른편과는 다르게 왼편 공간의 아이들은 편안하고 자유로운 일상을 보낸다. 그리스도 주변의 나약하고 노쇠한 인물들은 그리스도의 왼손 손짓에 따라 불안과 동요를 잠재우며 안정을 찾는다. 화가는 바닥 화면도 양분하여 오른쪽은 단색 회색의 무의미한 공간으로, 왼쪽은 선명한 노랑과 파랑의 연속적 무늬로 미래의 공간을 암시한다. 그러나 오른편 아치 뒤로 펼쳐진 무한한 푸른 하늘은 참회의 기회를 부여받은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통로로, 그리스도는 자비를 보여준다.

엘 그레코가 활동하던 당대 스페인은 유럽 최강국의 위상을 지닌 해가 지지 않는 팍스 에스파냐로, 국왕 필립페 2세는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가톨릭 교회의 정통성을 옹호했다. 성화를 그리기 위한 삶을 살았던 그의 ‘성전 정화’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가톨릭 교리와 체계 재정비의 일환으로 의도적으로 적극 추진한 주제였다. 만인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타락시킨 이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엄한 단죄는 미움의 원색적 표현이 아니라 사랑의 단면이다. 그리스도는 죄와 악행을 참회함으로써 그의 품으로 회귀하라는 초대의 메시지를 긍정적 차원의 분노로 제시한다. 관람객은 그리스도의 상반된 두 손에서 정의와 사랑을 확인한다. 기독교 미술을 통해 과거인들은 종교를 보았지만, 현대인은 과거 위대한 화가의 예술과 종교에서 성서를 읽고 이해하며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선다.

<이순희 아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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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entered: 09-25-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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