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교리

정남진 신부 특강, "성경 말씀, 어떻게 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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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신 말씀 안에서, 사랑이신 주님 품에서….”

지난 20일(수) 본당에서는 “성경 말씀, 어떻게 들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특강이 있었다.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로마 성서대학)는 성경을 보는 올바른 시각과 묵상 방법에 대해 열띤 강의를 해 신자들이 ‘말씀’에 보다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이해를 도왔다. 정 신부는 강의가 끝난 후 “말씀에 대한 신자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어 강의 내내 더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강의와 인터뷰 중 주요 내용이다.

말씀을 묵상할 땐 ‘예수님의 마음’을 찾아 보세요. 그 마음을 붙잡고 우리 마음에 품는다면, 그 만남으로 우리의 사랑은 깊어집니다. 성령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성경의 언어는 고백의 언어 -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 역사를 이해해야

구약 성경을 읽다 보면 많은 의문이 생깁니다. 현대 자연 과학과 상충되는 내용들은 물론, 두렵고 잔인한 하느님의 모습도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나 노예들에 대한 구절을 접하노라면 정말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일까 싶을 정도로 의구심과 거부감이 들죠.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성경의 하느님은, ‘절대 객관의 신’이 아니라‘그 때 거기에서 살던 사람들이 인식한 신’이라는 것, 또한 성경의 언어는 ‘객관적 진술’(신문이나 역사책 같은)이 아니라, ‘고백의 언어’ 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의 모습이 잔인하게 묘사된 부분을 한 번 생각해 볼까요. 당시 이스라엘은 약소국으로 생존을 위해서 주변 민족과 크고 작은 전쟁을 늘 겪으며 살았습니다. 당시 그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에서 그들이 인식한 신은 자기 민족을 지켜주는 신, 원수를 물리쳐 주는 수호신의 범주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에 대해 서술된 구절을 보면, 하느님이 적들을 모두 죽이라고 말씀하셨던 식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승리는 이미 수백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건과 기록 사이에는 수백 년 혹은 천 년 이상의 간격이 있습니다). 백성들은(신앙인들은) 그것을 후에 하느님의 도우심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자신들이 학살했던 적들까지도 하느님의 힘으로 죽인 것이라고 고백했던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들이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고방식과 신앙의 눈으로 ‘하느님의 은총과 도우심’을 인식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지평 안에서 고백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부분이 당시의 문화와 사고방식 안에서 단편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이 쓰여졌던 당시의 환경과 시대 배경을 고려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무조건적,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탄생한 책임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성경 저자의 의도와 저자가 갖고 있는 인식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열쇠로 구약을 읽다

예수님 역시 구약의 말씀과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혼인에 대한 말씀(마태 19장)을 살펴볼까요.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는데,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신명 24,1)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마태 19,8) 만일 우리가 구약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지켰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려라’고 한 모세의 말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다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마태 19,6)
당시 구약의 백성들이 갖고 있었던 인식 수준은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 자유를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뒤쳐져 있었습니다. 200년 전에 노예 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 않았던가요? 하느님은 그들의 눈높이에서 말씀하셔야 했고, 그 높이를 시작으로 그들을 조금씩 성장시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견과 복음 선포로 당신의 계시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하느님 당신이 누구이신지, 어떤 분이신지, 당신이 이 백성들에게 진정으로 하고자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는지를 이제서야 감추지 않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을 열쇠로 구약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구약의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겁니다. 구약만으로 하느님의 모습을 구성한다면, 그 하느님은 너무나 불완전하고 단편적일 수 있습니다. 그저 정의롭고 무서운 재판관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밝혀진 하느님의 모습을 염두에 둔다면, 구약에 쓰여진 그분의 모습을 새롭게 이해하고 재해석하게 됩니다.

말씀 안에 담긴 생명은 우리 안에서 역동하고, 성령을 만나게 하고, 기도를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 말씀은 우리안에서 새로운 씨앗을 싹틔웁니다.

사실, 당시 유다인들은 구약의 말씀에 의문을 가질 것이 전혀 없었겠지요. 그것은 그들의 인식과 문화 안에 완전히 부합하는 말씀이었고, 그러기에 그들에게 구약의 말씀은 하나도 거를 것이 없는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였으니까요. 우리는 동화책을 읽으며 그 이야기에 과학, 문화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동화책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챕니다. 구약의 말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복음을 열쇠로 구약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신앙을 발견하고, 끝까지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신 하느님의 성실한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두 주체가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고 갈등을 겪고 화해하는지, 또한 그것이 누구에 의해 주체적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 안에 담긴 메시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생명이신 말씀으로 나를 채우다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셨다.” 누가요? 바로 예수님입니다. 주님이 말씀이십니다. 우리는 성찬의 전례 때만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전례에서도 예수님을 모십니다. 그분을 모시고, 그분을 만납니다. 말씀의 전례는 단순히 신자들에게 성경을 읽어 주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주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모시고, 그분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 자기 성찰 ▶ 예수님 마음 붙잡기

묵상의 쉬운 방법은 자기 성찰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으로 ‘나’를 한번 들여다 보는 겁니다. 나는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진정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더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그 방법 중 하나는, ‘예수님 마음’을 찾는 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그 안에서 예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시고 말씀하셨는지를 찾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루카 7,11-17) 내용을 보면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고(루카 7,13) 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과부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바라보시며 측은함을 느끼셨을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감동을 느낍니다. 예수님의 그 마음을 더 면밀히 찾고, 그 마음을 붙잡으세요. 그 마음에 푹 잠기세요. 우리는 모든 복음에서 그러한 예수님의 마음(혹은 성부의 마음)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붙잡고 우리 마음에 품는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만남으로 우리의 사랑은 깊어집니다. 성령께서 이끌어주십니다.


성 정바오로 성당 신자 여러분께

강의를 듣는 신자분들의 눈빛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저도 덩달아 힘이 나고 기뻤습니다. 제가 이곳에 잠시 머물면서 느낀 것은 이곳 신자분들이 굉장히 능동적이시라는 겁니다. 신부가 무언가를 전하면 스폰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순수함과 적극성을 함께 지니신 것 같아요.
그런 순수함으로 성경도 순수하게 좋아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때론 어렵고 딱딱해서 읽기 싫은 부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곳에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어요. 그러니 성경을 읽을 때는 편식하지 마시고 골고루 읽어보세요. 어떻게 보면 우리는 밭을 갈고 있는 인내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밭,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밭을 우리가 일구어 나가는 겁니다.
씨앗은 작고 투박하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생명이 담겨 있습니다. 말씀도 그렇습니다. 때론 감추어져 있고, 어렵죠. 하지만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여보세요. 곧 그 안에 생명이 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 안에 담긴 그 생명은 우리 안에서 역동하고, 성령을 만나게 하고, 기도를 불러일으키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변화된 삶은 새로운 토양이 되어 다시금 새로운 씨앗을 싹틔웁니다. 우리가 온 삶으로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은 우리 안에서 반드시 그 싹을 틔웁니다.
성 정바오로 신자 여러분! 생명이신 말씀 안에서 숨쉬며, 우리 삶 안에서 주님 생명의 씨앗을 싹 틔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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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entered: 09-2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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