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연중 제18주간 금요일)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Date entered: 08-05-2016
우리가 살면서 어린 시절 어린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 삶에 지혜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그 말씀들 중에 ‘사람은 자기 할 나름이다.’라는 말마디가 있습니다.

사람이 환경의 지배는 받는다고 하는데 누구나 공감하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붙임성 있고 친절한 사람,
이왕이면 유머가 있고 긍정적인 사람은 주위 사람들을 끄는 힘이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여유와 해결사의 역할을 조용히 해냅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느님께서 창조사업을 하실 때
반복적으로 많이 쓰신 말씀이 ‘보니 좋았다.’라는 표현이시지요.

그리고 창세기 저자는 하느님께서 창조사업을 다 마감하시면서도 하신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창세 1,31)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선을 향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것이 본래의 모습을
지닌 것입니다.

세상 창조 때에 어두움이 있었고 하느님께서 빛을 창조하셔서 세셍에는 빛과 어두움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사가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기쁜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지요.

마태오는 이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4-25)

이 세상에서 소중한 것들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재물이라고 하겠지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명예’를 꼽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26절)라고
말씀하신대로 생명이 사람에게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중한 생명을 복음과 주님을 위해서 바칠 수 있으면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사람에게 있어서 주님이 첫째이고 함께 따라오는 구원이 가장 소중하다는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세상에 빛과 어둠이 있듯 선과 악이 공존하고 또한 행복이 기쁨이 있는가 하면 또한
슬픔과 고통이 있게 마련이지요.

어느 순간 이것이 기쁨이다하고 하면 그 뒤에 슬픔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마냥 기쁨과 행복에 취해서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할 나름’이라고 신앙인은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감사’를 얻을 수 있고
악한 세상에서 선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종말의 날에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오시는
주님 앞에서 사람은 각자 심판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그 기준은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라고 하시는데 하느님의 나라를 미리 산 사람이
그대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여기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나라에 오는 것을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28절)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
이미 주님의 나라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매사 찌푸리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과연 갑작스런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천국가라해도 생소하거나 또 어지럽거나 현기증이 나겠지요. 천국의 삶을
이미 맛들이고 준비된 사람이 바로 하느님 나라로 가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이왕 우리가 이 세상을 산다면 행복해야 되겠지요.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며 의미 있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십자가가 있다고 해서 굳이 찡그리며 멋없이 살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이왕 하는 일이면 기쁘게, 이왕 하는 봉사라면 멋지고 기꺼이 한다면 우리는 이미 천국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이웃과 행복하게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도 잘해야 되겠지만 이웃도 반반하고 좀 좋은 사람들이 있으면 참 좋겠지요.

이웃을 우리 마음대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고 하네요.

속이 좁아터지고 삐치기를 잘하고 나대기를 잘하는 이웃은 정말이지 잘하려고 해도 자신을
지치게 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 중에 진실하고 변함없는 이웃을 둔다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인 것입니다.

단 하나의 벗이라도 있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좋은 이웃이 너무 많으면 고개 돌리기 바쁠 것이고 목이 붓거나 또 가랑이가 찢어질 것이지요.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걱정이 되셔서 그런지 진실하고 좋은 이웃을 많이 주지는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마저 찾지 않을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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