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연중 제17주간 토요일) “주님, 은총의 때이옵니다.”

Date entered: 07-30-2016
비운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또 한 차례 죽음의 위기를 맞습니다.

사제들과 다른 예언자들이 백성들 앞에서 예레미야를 거슬러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예언했으니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파견하시며 해주셨던 말씀을 전하였다고
말하지요.

대신들과 온 백성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예레미야가 사형을 당할만한 죄목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다고 두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를 벗어납니다.

세례자 요한은 정치꾼인 헤로데에 의해서 죽음을 맞습니다.

헤로데는 로마의 막강한 세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권력자의 특징인 군중을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도 또한 연약한 인간이어서 세례자 요한의 충언에 귀가 거슬려 그를 감옥에 가둡니다.

자신에 대해서 바른 말을 하는 요한을 죽이고 싶어하지만 그를 예언자로 존경하는
군중이 두려워 망설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부인으로 데리고 사는 헤로디아의 딸이 자신의 생일 축하연에서
춤을 잘 추어 사람들을 기쁘게 했던 것입니다. '

헤로디아의 딸은 어머니의 청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청합니다.

그래서 한 소녀의 춤춘 댓가로 의인은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습니다.

그의 제자들이 그의 주검을 거두고 그 소식을 예수님께 알리지요.

우리는 가끔씩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지?’라는 한탄의 소리를 듣기도 하고
도 내심 말하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나의 가치 기준이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네.’라는 것이 더 솔직한 답이겠지요.

그래서 어른들께서 ‘세상은 물흐르듯 바라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젠가 밧줄로 묶어둔 짐들을 풀을 때가 있습니다. 묶을 때는 풀어지지 말라고 단단히 매지만
막상 풀을 때는 어떻게든 쉽게 풀려고 애를 쓰지요.

그러다가 ‘누가 고약하게 밧줄을 묶었군.’하며 불평도 할 수 있겠지요.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으면, 지나가면 그 뿐인데 왜 우리는 순간순간 매여서
감정을 조절하지도 못하고 욕심이라는 데에 갇혀서 허덕일 때가 있는지요?

하느님의 예언자인 예레미야가 억울하게 종교지도자들 앞에 죽음의 위기를 맞아야 하고
세례자 요한이 한 소녀의 춤의 댓가로 죽음을 맞아야 하는 모습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고 자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물 흐르듯 지나가 버리고 그것을 바라보던 나도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어른들이 말씀하듯 우리는 부족하고 어디에 잘 매이기는 해도 초연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예레미야든, 세례자 요한이든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 안에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분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외 아드님이시지만 십자가에 매달리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당신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가려진 시야로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왜 그분은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나요?’라는 되 질문에도 우리는 제대로 답을 찾지도 못하고
사실 서성거려야 하잖아요?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 안에서 또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던 아드님의
순명 안에서 비로소 우리는 의인의 고통과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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