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강론

(성녀 마르타 기념일)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Date entered: 07-29-2016
요한 서간의 저자는 하느님 사랑에 대해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요한 서간 저자는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사랑을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우리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게 하시고 그런 관계를 통하여 우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구약과는 달리 우리가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고 우리도 하느님 안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게 되고 하느님께서도
우리 안에 머무시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의 서간만큼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과의 관계를 잘 설명할 수 있을까요?

복음은 베타니아에 사는 마리아의 언니 마르타에 대해서 두 차례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주님께서 그들의 집에 들리셔서 식사를 하실 때이고(루카 10,38-42) 한번은
그의 오라버니가 죽었을 때 그곳을 방문하신 예수님을 맞았던 마르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루카는 예수님 식사 준비로 분주하던 마르타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던
마리아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마르타는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주님께 불평하는 모습이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친하던 마르타의 오라버니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도 늦장을 부리시다가
라자로의 무덤을 찾으십니다.

마을 어귀까지 마중 나갔던 마르타는 일찍 오지 않으신 주님을 원망하는 마음과 함께 인사의
말을 합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요한 11,21-22)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르타를 위로하며 말씀하십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23절)

마르타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 다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4절)

주님께서 말씀하시지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25-26절)

마르타는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합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27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원에 대해서 인간적으로만 이해하던 마르타를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으로 끌어 올리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베타니아에서 주님께서 오라버니가 죽기 전에 오셨더라만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인간적인
차원의 마르타에서 메시아와 부활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는 초대교회의 신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가지는 두 가지 측면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면을
마르타는 그녀의 삶과 말씀으로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의 시대의 약속은 아직 우리에게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사이에서 우리는 때로 고뇌와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서 불안할 때도 있고 절망을 체험할 때도 있습니다. 마르타가 인간적인 쓸 데 없는 것에
매달려서 주님께로부터 한 말씀 들었던대로 우리도 신앙인의 갈등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타를 바라보면 부족한 여정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이 부활의 희망이 우리의 순례의 삶을 지탱하게 해 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또한 갖게 해줍니다.

갈등하는 삶이지만, 또 때로 흔드리는 삶이지만 천상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는 마음을 마르타 성녀는 우리를 지니게 해줍니다.

우리도 요한서간 저자의 표현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우리 또한 하느님 사랑에
머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주님께서 마련하신 길을 걸으며 시편의 저자의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습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시편 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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