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향기

라우렌시오 신부의 "살며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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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게 하는 한 마디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몇 주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이 시간 동안 여러분들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이 새해를 맞이하여 다짐한 계획들을 차곡차곡 실천해 나가는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이 지난 해에 후회했던 일들을 반복하는, 그래서 조금은 아프고 힘든 ‘무너짐’의 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지나고 보면, 우리들이 걸어온 발자국은 왜 이리도 삐뚤삐뚤하게 느껴지는지요! 하지만 어느 저자가 쓴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라는 책의 제목처럼, 그 삐뚤삐뚤한 발자국 안에도 하느님의 배려가 있었음을 발견하는 것 또한 은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이제는 그동안 걸어온 삐뚤삐뚤한 발자국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의 부족함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기 보다는, 앞으로 우리들이 걸어갈 발자국 안에 담길 하느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발견하고,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옵니다. 우리가 볼 때, 아주 예쁘고 화려한 꽃도, 흔들리지 않고 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위기’가 와도, 또 우리들의 삶에 ‘흔들림’이 있어도, 모두 똑같이 반응하지는 않습니다. ‘위기’ 앞에서 어떤 사람은 ‘점집’으로 향합니다.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죠. 어떤 사람은 ‘술집’으로 향합니다. 지치고 힘든 마음을 잠시나마 달래보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로 향합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점집’으로 가도, ‘술집’으로 가도, 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도, ‘위기’ 앞에 놓여있는 우리들의 공허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제게도 사제가 되기 위한 여정 위에서 적지 않은 ‘위기’들이 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습니다. 성소자가 줄어들고 있는 요즘, 저희 반은 50명이 정원인 신학교에서 50 명이 입학한 첫 반이자, 마지막 반이었습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49명이 입학했습니다. 신학교에서 신입생들은 입학 전에, 약 1 주일간의 적응 기간을 먼저 갖습니다. 그런데 그 적응 기간 중에 한 형제가 그만둔 것입니다. 친해지기도 전에 너무 빨리 일어난 일이라, 저희는 슬퍼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길을 달리하는 형제를 바라보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힘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흔들림’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은 신학교 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천사들만 사는 줄 알았던 신학교에서, 그렇지 않은 형제들을 바라보며 실망하고, 또 그런 형제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제 자신의 부족함과 마주하면서,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습니다. 아무것도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신학교에서 가장 힘든 것처럼 느껴지는 제 자신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삶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짐을 꾸릴 때가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신학교에서 맞는 첫 성주간에 접어들었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로 기억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호하며 성지가지를 흔드는 그 순간에도 저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행렬이 끝나고, 성당에서 계속해서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기가 봉독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수난복음의 한 부분이 자꾸만 제 마음을 건드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부분은 바로 주님과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고 고백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그것도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예수님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칩니다.

그가 이 말을 하는 순간에 닭이 울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바라보셨다. 베드로는 주님께서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너는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루카 22,59-62)

그 때 베드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혹시 나도 주님과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걸으려고 했지만, 실상 내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거부하며, 그분을 부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밖으로 나가면 저도 슬피 울 것만 같았습니다.

이처럼 저를 뒤흔드는 ‘위기’ 앞에서, 저를 붙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년마다 저를 살게 하는 한 마디를 정하고, 그 한 마디를 끊임없이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에는 코린토1 서 3장 6절의 말씀으로 정했습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제가 아무리 심고 물을 주어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는 ‘겸손함’을 청해 봅니다. 여러분들도 새해를 맞이하여, 여러분들을 살게 하는 한 마디를 정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한 마디가 ‘점집’에서도, ‘술집’에서도, 그리고 ‘사람’에게서도 찾을 수 없는 ‘위로’를 여러분들에게 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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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entered: 01-2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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