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의 글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마른 목을 축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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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비나

병신년 새해인 2016년 1월 23일 토요일,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많은 눈을 본 것은 아마도 처음이지 싶었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체가 제각각 거처에서 최소한의 운신만 할 뿐, 온 세상이 마치 태고의 모습처럼 고요하고 적막하였다. 토요일 오후가 되니 셀폰이 나의 의식을 깨운다. 문명의 한가운데 내가 있음을 절절하게 자각하는 순간이다. 카톡!! 카톡!! 외쳐대는 셀폰을 들춰보니 알링톤 교구 주교님께서 주일 미사에 참석하지 말고 안전하게 집에서 방송미사 혹은 기타 등등으로 대신하라고. 고해성사에서 면제라고. 카톡!! 카톡!! 이번에는 본당에서 소식이 왔다. 주일 24일 8시, 10시, 그리고 우드브릿지 오후 3시 미사, 오후 5시 미사가 있노라고... 하지만 눈 때문에 주행이 어려우면 교구장 지침대로 따르라고...

1 월 2 4일 주일 아 침이 되었다. 눈 때 문에 나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침 미사를 걸러야 하는 주일 아침은 여느 일요일 아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미국에 온지 5년여 동안 나의 주일 아침은, 아니 성당에 가는 일은 마치 나에게 한 주간 중 가장 큰 의식이며 가장 큰 위로였다. 어린 시절 내가 다니던 작은 성당에 모셔져 있던 그 십자가상의 똑같은 예수님이 계시고 성모님이 계시는 이 곳, 때로는 맨 앞줄에서 미사를 보시는 연로하신 할머니들 속에서 몇 해 전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곤 하는 이 곳,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는 것은 나의 본향을 일깨우는 일이요, 마음의 안식을 얻는 행위였던 것이다.

햇살이 따사로워지는 오후 들어 나는 남편과 함께 우드브릿지 3 시 미사를 참례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집에서 성당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신호등이 작동이 안되는 곳도 더러 있었고 차선이 확보되지 않은 곳이 있어 위험하기도 하였지만 다행히 성당에 잘 도착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이미 3시가 넘었음에도 주차된 차가 서너 대밖에 없어 미사가 취소되었으려니 하고 본당 안에 들어가니 주임신부님께서 10명 남짓한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고 계셨다. 한 자매님께서 뒷자리에 앉아 미사를 드리던 우리 부부에게 예물 봉헌을 하라신다. 폭설로 인해 상황이 여의치 않았는지 그 자매님은 우리에게 송구스런 표정으로 제병을 준비하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포도주만 들려 주셨다. 어쩌면 오늘 성체를 모시지 못하겠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던 차에 신부님께서 혼자서 미사 도구를 꾸리셨을 짐 보따리에서 몸을 구부려 손수 거양성체용 큰 제병을 꺼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난 순간 울컥 하였다. 어려운 길을 혼자 달려 오시고 미사를 집전하시기 위해 이것 저것 챙겨오신 신부님의 노고가 저 명치 끝에서부터 전해져 왔던 것이다. 성체 축성을 하신 후에 성체를 신자 수에 맞게 작게 쪼개어 분배를 해주시는 신부님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경외심이 느껴졌다.

이렇게 어렵고 미비한 상황에서 단지 몇 가족과 함께 미사를 드리는 동안, 문득 그 옛날 박해 시대 때 신자들이 남의 눈을 피해 깊은 산골에 숨어 교우촌을 이루고 매번 긴박함 속에서 미사를 드렸을 모습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마른 목을 축이는 느낌이 드는 것은 또 왜일까? 어려운 길 헤치고 어렵게 찾아들어가서 드리는 미사는 몇 배의 은총을 주신다던 그 옛날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서일까? 그 옛날 가족여행 다닐라치면 낯선 곳에서 성당 찾아 헤매며 미사를 드리던 생각이 난다.

년 전 한 국에 갔 을 때 내 가 다 니던 성 당에 언 니와 함 께 새벽미사를 간 적이 있다. 젊은 보좌신부님께서 미사를 집전하시면서 당신의 본명축일에 신자들한테 받은 영적, 물적 선물의 보답으로 노래 한곡 선사 하시겠노라며 목이 잠긴 그 새벽녘에 기타를 치시며 ‘임쓰신 가시관’을 불러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 노래를 끝까지 듣지는 못하였다. 나는 대신 “이 뒷날 나를 보시고 임 닮았다 하소서. 이 세상 다할 때까지...” 라는 부분에서 노래를 멈추시고 속울음을 우시는 젊은 사제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나머지 부분은 신자들이 대신 불러서 그 감동을 더해 주었다. 그분이 앞으로 한참을 걸어가셔야 할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때 신부님의 그 눈물의 의미를 세속에 발을 흠뻑 적신 내가 내 식대로 해석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나는 또 오늘 어쩔 수 없이 험한 길 헤치고 달려와 짐보따리 풀고 계시는, 오랜 세월 한 길만 줄곧 걸어오신 사제를 바라보며 내 식대로 울컥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오늘 유난히 ‘임쓰신 가시관’ 노래의 울림이 하루종일 내 안에서 메아리치는 것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망연자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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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entered: 01-31-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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